결국 앞편에서 획! 하나 못긋고 끝난 이야기는
다시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으로 돌아온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대학원 연구실 구석에서 연구(?)에 매료된 나에게 새로운 무엇인가 다가왔다...
바로 루키! (사실 루키라는 서비스가 처음에는 바투 라는 이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어느 화창한 여름날의 연구실앞 두더지굴(?)에서였다.
두더지굴은 단과대학건물 1층에 연구실 형들과 매시간 (담배)를 피는곳인데,
이곳을 비오는날 행정실 선생님들이 지나가시면서 연기가 천장에 먹구름처럼
쌓여서 연기가 빠지질 않는다고 두더지굴이라 칭한곳인데, 한때 30~60분
엉덩이에 뿔이라도 난것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였던 곳이 있다....

그날 승민 형님이 "준형아 바람좀 쒸!러!갈까?" 하는 말에 두더지굴로
끌려(?)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승민 형님은 며칠 전에
본능에 충실하던 형님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만난 이야기를
너무나 생생히 전해주시며 내게 약간의 부연설명과 함께 서버를 100대 마구마구
만져 보고 싶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다.
이런 정말 꿈같은 제안에 갑자기 환상에 빠졌다고 해야하나?;

순간! 나는 왠지 모를 기운에 휩싸이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고 하늘에서 빛이 내려온 듯한 느낌(?)'
까진 아니었고, 재밋겠다는 생각에 순간 나도 모르게
 "오우케이~(거침없이 하이킥의 박해미 버젼으로~)"
라고 답변을 하게 되었고, 엄청난 신고식(?) 을 거쳐 Team Rukie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부터 무언가 말로 향언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커져만 갔다.. >_<;
1111111 이렇게...; 응응??;
그래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Team Rukie 의 일원으로 가장많은(?) 고민
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이트를 들랑 날랑하며 방문자 순위 1위를
독차지(?) 하고는 있는 열혈 회원으로 활동중?? 이다. 하지만 이런걸
시기하는 몇몇 멤버들이 다른 목적에서 그런다는 소문(?)을 만들어
참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ㅋ
그래도 지구는 둥구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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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준형. 나이 스물 셋. 루키에서 정보·시스템 운영를 담당하고 있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평균연령 스물여섯인 루키 멤버들 사이에서 가장 나이 어린(!) 멤버이다. (그러나 Team Rukie의 형님들이 막강 동안(?)인지라 막내 대접은 잊은지 오래! ㅜ_ㅠ 너무 일찍 벤처형(?) 얼굴을 가졌을 뿐... OTL) 취미는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카달로그를 수집하며 교양을 쌓는(?)것과, 하루종일 컴퓨터랑 대화하는게 취미다... 특기는? 40시간 연속 드라마 보기... ㅎㅎㅎ  

이래저래 오지랍이 넓어서~ 여기저기 이것저것 해본건 많은데 크게 벌려둔건 없고. 졸업하기 전에 뭐 하나 굵직한 획! 하나는 그어야 겠다는 생각만 많았던 시절이다.
컴퓨터를 앞에 두고 다소 늦게배운(고3 수능100일전..;) (담배)를 매일 한갑씩 털어내던 때가 있었다....ㅋ(그래도 이 글을 쓰는 현재는 끊은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ㅋ)

쩔어있는 바탕화면(?)

쩔어있는 바탕화면(?)

나는 본래 정신이 없을정도로 복잡하게, 작업하는 화면들로 한가득 모니터를 채워 놓아야 직성이 풀릴정도로 컴퓨터를 가혹하게 부려먹는다. 그것도 컴퓨터 한대가 아니라 서버(특정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컴퓨터) 수십개를 마구 휘저으며 이것저것 작업을 할 정도로 컴퓨터를 그냥 놔두질 못한다.^^;

내가 컴퓨터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친구와 분당 야탑동에 있던 IDC(흔히 서버 호텔이라 불림)
에 무턱대고 찾아갔다. 그리고는 안을 구경시켜달라고 졸라서 1층부터 꼭대기까지 투어를 마친후에
"내 갈길은 이거다!!!!" 라고 계속 외친 후, 봄여름가을겨울 1년365일 24시간을 컴퓨터랑 같이 보냈다....
(요즘은 업무 일과시간 외엔 컴퓨터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사랑스런 서버들~ㅋ

사랑스런 서버들~ㅋ


그리고 하루에도 윈도우만 20번을 깔았던 시절서버라는 얘기만 들어도 흥분이
되던 시절에 문뜩 신문과 뉴스에서 몇일째 더이상 윈도우가 없어도 된다며
"리눅스"라는 운영체체가 출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컴퓨터매장에
가서 "X짜 리눅스6.2k" 를 구입했다...
그러곤 다짜고짜 설명서도 제껴둔채 컴퓨터에 설치하다 아버지께서 CAD로
도면작업해둔 파일들을 몽딸 날려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덕분에 무언의 잔소리를
들은지 한두달.... 이상하게 이 "리눅스" 이것에 끌리기 시작했다.

근데 언제쯤 루키를 만나 이 뜨거운 가슴에 더욱 불을 짚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되는데, 지구는 뭐 둥구니까~ 자꾸 걸어나가다 보면 온세상 사람들 다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이얘기 저얘기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올듯...^^;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ㅠㅠ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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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름 모를 사람이 (한참을 이야기 하고 술잔이 오고 가도록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듯...) 내 몇 달 전의 기억 속에 짱박혀 있던 주상돈이 아닐까하는 호기심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주상돈씨 아니에요? 서울대 다니시고..."

주상돈... 당황한다.

"금년 초에 저한테 태터툴즈 플러그인과 관련해서 메일 보내신 적 있죠?"

상돈씨가 대답하기를 자기가 금년 초에 계획하던 것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한테 이런 저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단다. 그렇지만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며 잡아 뗀다.

자, 기억을 되살려 보자.

2007년 초의 이야기를 하자면, 한창 태터툴즈로 친구들과 팀블로그를 만들고 여기에 필요한 태터툴즈 플러그인을 만들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내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하나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연락 좀 달라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이런 식의 피드백은 처음이었던지라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댓글에 남긴 메일 주소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하세요. 주상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꽤나 긴 장문의 답메일을 받았다.
정확히는 2007년 3월 19일의 일이었다. (역시 내가 애용하는 구글 메일에 모든 기록이 남아있다.) 메일내용의 요지는 본인이 '블로그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내가 만든 플러그인을 보았고, 이것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적용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카투사로 복무 중이지만 1달 뒤면 제대를 할 것이고, 서울대에 다니고 있다는 자기 소개도 했다.
나는 이 메일을 보면서 '아... 서울대생도 뻘짓을 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뭐랄까... 세상물정 모르는 서울대생의 뻘짓거리? 여튼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전 됐습니다~"하는 답변을 줬다. 그런데 또 메일이 왔다. "혹시나 너무 거창하게 말해서 부담이 가셨을지 몰라서 다른 식의 관점도 말씀드립니다... 어쩌구 저쩌구..."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정확히 11통의 메일을 주고 받았다. 결국에는 '음... 되게 진지한데?"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참여 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이건 뭥미?'스러운 결말이지만, 아쉬운건 없었기에 내 나름 생각에 제대하고 정신차렸나 보다하고 넘어 갔었다.

그 날 설명회에서는 상돈씨가 어떤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는 비밀이라며 이야기 해 주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기획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에게도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8월 말은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정신 못 차리고 헤롱대던 시기였다. 외국에서 너무 잘 지냈던 탓이었을까? 학교는 다니기 싫었고, 필드에서 뛸 수 있는 진짜 일이라는 걸 해 보고 싶었다. 나를 크게 성장시킬만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스타이밍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상돈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와 꿈, 야망에 대해 들으면서 역시 자연스럽게 Team Rukie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이 시작된지 1년이 채워지고 있다. 짧지않은 시간을 팀원들과 동거동락하면서 보낸 이 시점에서 팀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첫인상에 비한 행태(?)는 많이 달라져있다. 하나둘 모여가며 시작된 우리의 스타트업라이프에 많은 에피소드들도 쌓였고, 의미있는 히스토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뿌듯한 감이 있다. 앞으로도 내가 이들에게 더 많은 의미가 되고 이들이 나에게 더 많은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한가지 오묘한 느낌은 이렇게 다시만난 주상돈의 압박속에 오늘도 개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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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내(Kenny2)

나이는 스물여덟, 경희대 컴공 휴학 중이고, 개발을 맡고 있다. 날로 살이 빠져가는 나를 보며 팀원들의 걱정은 늘어가지만, 정작 나는 "Kenny2의 청춘시대"라는 나름의 슬로건과 함께 어서 나의 청춘시대가 도래하기만을 바라며 오늘도 사무실에서 이틀 밤을 샌다.

사람의 운명이 바뀌고, 인연이 시작되는 것은 대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고, 계획된 약속보다는 바로 1시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만남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가 주상돈, 이해진 두 사람을 만난 그 날 술자리도 그렇다.

내가 애용하는 구글 캘린더에 의하면 상돈씨과 해진씨를 처음 만난 날은 정확히 2007년 8월 29일 이었다. 이 날은 소프트뱅크에서 주최한 리트머스2 프로그램의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IT 봉사와 여행 겸 해서 콜럼비아에 다녀온지 며칠 안 되어 적응 못하고 빈둥빈둥하던 차에 리트머스2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만나 뵙고 싶은 분이 있기도 하고 서울 구경 겸 해서 설명회에 참석했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호프집에서 뒷풀이가 있었는데, 이 때 내 오른편에는 상돈씨가, 상돈씨의 맞은편에는 해진씨가 앉게 되었다. 이 때 둘의 첫인상을 굳이 이야기 하자면, 상돈씨는 범생이, 해진씨는 날라리...
그 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내 또래는 상돈씨와 해진씨가 유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던거 같다. 두 사람은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리트머스2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둘이서 군대를 제대하고 창업을 준비한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경희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구성한 팀의 개발자도 경희대에 다닌다면서 ‘한승민’이라고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와 같은 00학번에 컴퓨터공학 전공이라는데 나는 '아싸'였던 관계로 누굴 물어보았든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승민이에 대해 상돈씨가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는데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에 MS에서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해 캠퍼스 내에 현수막이 걸렸던 친구였다. 컴퓨터공학 전공에서 현수막이 걸린다는게 흔치 않은 일이라 유심이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이 개발자들을 영입하려고 이메일도 수 차례 보내고 학교로 찾아가기도 했다는 나름의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뭐랄까... 갑자기 내 본능 속에 숨겨진 '촉'이 발동했다고 해야할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돈씨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왔다.

'이 인간... 내가 아는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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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07년 여름, 승민씨와 나, 상돈이 우리 세 명의 인연은(고생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대한 빨리 우리의 서비스를 세상에 내 놓고 싶어 좀이 쑤셨던 우리는 하루

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당시 제대로 팀이 다 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무실이란건 꿈도 꿀 수 없었고, 셋 다 학생신분이었던지라 당장 어디서 만나 이야기 할 것인지부터가 우리에겐 큰 문제였다. 셋이 만나 이야기하며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점심시간만 되면 3500원짜리 순두부찌개와 4000원으로 올라버린 제육덮밥 사이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아껴야 잘산다를 외치고 있다.) 그래서 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고 그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6시간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적도 있고,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커피도 시키지 않고 하루 종일 이야기하며 아르바이트 생에게 눈치 받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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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거나 현실은 냉혹한 것! 꿈은 미래여도 밥값과 차비는 현실이어라~! 생활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나름의 일을 하며 서비스를 만들어 갔다. 기획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상돈이는 계속해서 과외를 해야 했고 (그러나 상돈이가 이야기 했듯이, 돈이 많이 급했던 당시에 녀석은 왕복 시간만 3시간인 곳으로 한여름에 땀을 흘려가며 20만원 짜리 초등학생 과외를 다녔던 적도 있다.) 나 또한 전화 영어 회화 아르바이트(“헬로우~? 쏼라 쏼라 블라블라~)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해가며 서비스를 만들어갈 자금을 만들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7,8월을 보내고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운 가족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승민씨를 만나기 전에 상돈이와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이용해 서비스를 구현해 줄 개발자를 찾아 다녔다. 웹 서비스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마땅한 인맥도 없었던 우리는 개발을 할 수 있을만한 분이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이메일부터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그 때 우리가 만나 뵈었던 많은 개발자 분들 가운데서는 우리가 진짜 이렇게 일을 벌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떤 분은 우리에게 서비스를 구현해 줄 테니 1500만원(털썩-_-)을 달라고 하시기도 했고, 말도 안 된다며 공부나 하라고 타이른 분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rukie 서비스가 대학생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계속해서 크고 작은 현실의 장벽을 실감하며 이것들을 넘기 위해 노력해갔다.

그런 가운데 단 2시간 동안 우리의 아이디어를 흥미 있게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리신 승민씨는 아마도 인연이 아니었을까? (물론 승민씨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하시지만요~ㅎㅎ) 아무튼 이 기회를 빌어 아무 것도 없었던 우리 둘을 믿어 주신 승민씨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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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어느 날, 그들이 내게로 왔다. -_-

나는 연구실에서 후배와 프로젝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위이이이잉-위이이이잉하고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고, 나는 또 한 번 본능처럼 그가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통화 후,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메일의 주인공을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전화 목소리를 통해, 뭔가 샤프한 모던보이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날카로운 본능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짐작했던 대로 멋진 외모의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내게 메일을 보내고, 아이디어를 짜고, 팀을 만들고, 뭔가를 해 보려고 시도하는 바로 그 사람!

 

악수를 청하려고 다가갔고, 그는 웃으며 날 반겼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나와 통화한 그 사람이 아니었다. (?)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이해진이라는 사람이었고, 그 옆에 서 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주상돈. 그가 바로 내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통화를 했던 상상 속의 모던보이었던 것이다.

 

내 예상은 벗어났지만, 난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그의 기획 아이디어를 경청했다. SNS사이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Web은 늘 나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건 뭐 별거 아니군했지만 이야기 해 볼수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마법에 걸린 듯 나는 더욱 빠져들었고, 두 시간 만에 이들과 함께 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잠깐 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사실 그 때 나는 맛집 사이트를 준비 중이었다. 이집트에서 먹고 싶은 현지 음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먹었던 경험 덕에 (KFC도 인터넷으로 배달시켜 먹었다!!) 평범한 맛집 사이트에 SNS를 추가하여 기능을 정리하면서 관련 특허도 찾아보고, 수익 모델도 나름대로 정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SN을 발전시켜 대학가 주변과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맛집 서비스도 만들어 봐야지 했던 기억도 난다. 조만간 대학가 주변 맛집 서비스도 만들지 모르겠다. ㅎㅎ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해 지리라’(구약 욥기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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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주상돈, 나 한승민이 함께한 루키의 시작은 미약했다. 스폰서도 없었고, 사무실도 없었고, IT벤처 회사에서 개발자에게 개발용 컴퓨터 한 대 줄 수 없었다. 오로지 열정 하나였다. (그래서 전에 사용하던 개발용 서버의 암호는 열정이라는 글자를 변용해서 사용하였다.ㅎㅎㅎ)

그 뿐인가? 처음에 상돈씨가 보여준 기획도, 미약했다. ㅎㅎ 영업 파트인 해진씨는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사이트 기획서도 없는 상태에서 나 역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함께 고민했다. 사무실이 없기에 일단 그룹웨어를 통해 서로의 일정과 의견을 교환했고, 우리는 최강의 개발자, 디자이너, 시스템 관리자가 필요해졌다.

 

2008 7. 나에게 물어본다. ‘우린 창대해진것인가?’

아니 더 창대해지리라.’ 라고 대답한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성공시켜주고 싶은 난, 막장개발자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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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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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하고 여덟. 자세한 사항은 덮고 가기로 하자. 그냥, 세상에서 여자친구 다음으로 개발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 두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우기고 싶어도, 심상치 않은 다크써클이며, 점점 힘에 부치는 체력을 생각하면 며칠을 밤새도 멀쩡하던 때가 까마득하다. 루키 덕분에 밤을 꼴딱꼴딱 새울 때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는데…?’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좋다. 낚시도 좋아하고, 그림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맛집 찾아 다니면서 먹는 것도 좋아한다.

 

루키와 관련된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작년 여름, 나는 취업과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던 시절이다. 이미 잘 나간다는 IT회사 4군데에 서류는 통과한 시점이었고, 대학원도 가확정 됐었고.

 

그러던, 어느날. (알겠지만, 삶의 장면에는 늘 그러던 어느날이 존재한다.) 늘 그렇듯이 메일을 확인하는데 그날 따라 수백 개의 스팸메일이 와 있는걸 확인하고, 이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스팸함 버튼을 눌렀다.

 

>대출은 러쉬엔개스끼에서!

>국내 최저 수수료! 242%

>안녕하세요 :)

>전화로 영어공부! 후세인선생님의 생생한 발음!

>단돈 3억에 홈피 만들어드림

 

그 때 내 눈에 띈 메일이 있었으니, 다소 착하기 그지없고, 맹맹하기까지 하며, 흔해빠진 멘트, 안녕하세요:)”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그 메일을 열어보는 그 순간이 바로 내 스물 일곱의 무시무시하고 스릴 넘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순간이었음을 그 때는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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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고 나서 이건 뭐야~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지워버리기 미안해서 받은 편지함으로 옮겨놓고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늘 그렇듯이 메일을 확인하면서 어제 이상하게 눈도장을 찍은 그 메일에 다시 한 번 눈이 갔다. 그날 따라 내가 너무 센치했다. 뭔가에 목마른 느낌도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나를 알고 이런 메일을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에 답장을 보내 보았다. 빨랐다. 2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장문의 메일에서 간절함과 참신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알게 되었고, 메일을 보낸 주인공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 온다고 했다.

 

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기분이 들었고, 난 본능에 충실했다.

그리고
어.느.날. 그들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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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친절히 알려주고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 때에도 모든 것을 스스로 배워나가면서 해야 했다. 기획의 ㄱ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인터넷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는 지 쥐뿔도 모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이 알아듣게 생각만 전달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나마 이용해 본 엑셀을 통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셀 크기를 최소화해서 그 안에 색칠하면서 Rukie 서비스의 본격적인 첫 기획을 시작했다. 이로서 루키 멤버들에게 회자되는 전설적인 엑셀 2003 기획서 1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나 스스로가 서비스의 사용자 층이었기 때문에, 사용자의 요구 분석이나 시장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다.


기획을 하면서 동시에 팀을 구성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활동하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메일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해보라고 이것저것 웹 서비스 개발에 대한 조언을 해주시는 고마운 분도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의 CTO인 승민씨가 연락을 보내왔고, 해진이도 제대한 뒤라 둘이 함께 승민씨를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승민씨는 웹 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서 개발 쪽으로는 상당히 실력 있는 분 이었는데, 막 제대해서 군인 티 풀풀나는 대학생 두 명이 엑셀로 만든 기획안을 가지고 찾아와서 뭐라고 쏼라~ 쏼라~ 하는 장면이라니ㅎㅎ 하지만 오히려 승민씨는  그런 내공이 있어서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열정과 우리가 진짜 하려는 것의 가능성을 보고 흔쾌히 참여해 주준 것 같다. 승민씨 덕분에 루키 서비스를 실제로 진행하는데 데 중요한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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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을 하면서 한 두 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누가 빼앗아 갈까 숨기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의견을 구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발하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라고 해도 전문지식이 아닌 이상 내가 생각하는 순간 이미 최소 수 백 명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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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분대가 변경되어 같은 분대가 된 해진이에게 생각이 날 때마다 이것저것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거나 개인이 하기에는 불가능한 사업들이 많았다. 해진이는 사업가인 부모님 영향으로 사업적으로 무개념 상태였던 나의 엉뚱한 생각들을 고맙게도(?) 조기에 잘 막아주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 중에는 실제로 지금 사업화되어 투자 받고 진행되는 사업도 있다구!!)

 

여튼 이러한 생활을 하다 1월쯤에 내가 열심히 이용하던 스누라이프(서울대 대학생 커뮤니티)를 보고 대학생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 동안 하도 이것저것 말하면서 욕을 먹어 왔던  터라 개인적으로 나름 생각을 정리해보니 정말 괜찮고 생각할수록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이번에도 해진이에게 이야기를 해 보았더니 그 동안과는 다르게 끝까지 들어 보고는 괜찮을 것 같다며 같이 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_<) 날짜까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때는 정말 별 생각 없이,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대뽀 심정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우여곡절 많은 길로 오게 되리라고는 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시절이었다.

 

이후에 남은 군생활을 하면서 해진이와 함께 3개월간 스프링노트에 정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내가 먼저 5월에 제대했다. 그러나 제대도 했는데 학교 복학도 안 하면서 집에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야탑에 살고 있던 군대 선임의 소개로 야탑의 한 옥탑방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이전에 산 사람이 방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게 써서 방 전체를 옥시크린으로 열심히 2~3일 동안 닦았던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전에 살았던 사람은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 옥탑방에서 컴퓨터 5-6대 놓고 냄새 나는 개랑 살았던지라 방에는 된장국 냄새가 온 방에 케진동(_) 했었다.(;;;) 그러나 방세가 싸서 결국 그 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당장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는데 막 제대한지라 연고가 없어서 한여름에 버스를 타고 1시간씩 걸리는 곳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과외를 다녔다. 그리고는 뜨거운(?) 옥탑방으로 올라가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2만원 주고 산 조그만 선풍기 바람을 쐬며 기획을 했다. 요즘도 해진이가 그때 옥탑방 시절을 두고 자주 놀리곤 한다. 가구 하나 없는 널찍한 옥탑방에 한여름에 혼자 팬티만 입고 앉아 조그만 상 하나 펼쳐놓고 노트북으로 뭔가 하고 있는 꼴이 내가 생각해도 웃겼을 것 같다.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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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 상병에서 병장이 될 때쯤, 상돈이는 별난 인터넷 서비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인터넷 서비스의 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항상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사업에 관련된 얘기들은 언제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상돈이가 말하는 인터넷 사업들은 좀 심하게 터무니 없는 아이템도 있었고, 개인이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넌 요즘에 잘나가는 서울대 조선과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취직이나 잘해.”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진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돈이가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한국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업에 관련 된 정보를 공유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었다. 당장 복학해서 수강신청을 하려고 해도 강의평가수업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찍어서수업을 정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 학교에서는 블랙보드라는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각 수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수님, 조교까지 참여해서 수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젝트 과제가 나오더라도 모르는 것은 애들끼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조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학생들을 도와줬던 블랙보드 시스템은 나의 학교 생활에서 큰 역할을 했었다. 또한 우리학교 커뮤니티에 있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내가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꼭 들르는 사이트이기도 했었고, 교수님 수업 제대로 하시라는 이야기를 비롯한 재미있는 학교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상돈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학생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을 때, 나의 군생활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물론 제대를 4개월 남긴 시점이긴 했지만;; ㅎㅎ) 그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잊으며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녀석과 함께 어떤 서비스를 만들 것인지 계획하는 것은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


상돈이와 나는 24시간씩 교대 경비 근무를 했었는데, 병장이 되어서는 주로 PC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모든 커뮤니티와 외국 사이트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프링 노트에 우리의 생각을 계속해서 공유해 나갔다. 상돈이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그 다음날 녀석이 자는 동안 아침에 내가 교대 근무를 한 후 읽어보고 나의 생각을 적는 24시간 풀 가동 방식으로 기획이 시작되었다. (지금 다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민망한, 웃음만 나오는 참 어이없는 내용도 많다.;;)


또한 우리 부대에 있었던 60~70명의 카투사들은 거의 90%이상이 서울권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설문조사도 어려움 없이 거의 매일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도 우리의 설문을 즐거워했었던 것(?)같다. (병장 말기였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다.)


그렇게 3개월간 한 군대 기획을 들고 제대를 할 수 있었고, 이후에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파란만장하고 빈곤한 야생 벤처 생활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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