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야생 드라마'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7.04 두번째 이야기. 사실 나는 말야... 14
  2. 2008.07.01 야생 블로그, 그 첫번째 이야기. 12

. 주상돈.

 

나이 스물 다섯.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휴학 중. 전에는 축구 할 때 풀타임으로 뛰어도 멀쩡했는데, 벤처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가끔 계단 내려갈 때 다리가 후덜거리는게(안보여라...-_-) 요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나는 2005년까지 학교를 다니며 별 생각 없이, 남들처럼 그렇게 흘러 가는 대로 살았다. 그러다 친구들 틈에 묻어 신청한 카투사에 친구들은 다 떨어졌는데 엉뚱하게 나만 붙어서 군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할 때까지만 해도 진짜 2년간 갇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했는데(카투사가 편한 곳인지도 몰랐으니 양해 바람-_-) 논산에서 4주 훈련을 받고 행군을 하면서 향후 2년을 이렇게 하기 싫은 마음을 가지고 끌려 다니면서 시간만 보내면 정말 최악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카투사 신병 교육대에서 한국 내 주둔하고 있는 마지막 보병부대에 전투병으로 지원했다. 이때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경험 하게 되었다. 처음 배치 받자 마자 적응할 틈도 없이 말 못하는 신병으로 장대비 속에서 23일 훈련도 하고 산속에서 잠도 자고 며칠 동안 꼬질꼬질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 보니 가만히 있었으면 편한 보직 받았을 텐데 괜한 호기였나 싶었다. 하지만 부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선택에 의해서 지원을 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생각 있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2년간의 군생활이 끝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정말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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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경, 훈련을 마치고

지금까지 Rukie 1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같이 믿고 의지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매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랑 일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군대라는 내 생에 첫 번째 선택을 통해서 평생에 몇 명 만나지 못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2명이나 만났고, 그 중 한 명이 루키의 공동 창업자인 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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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큼 건방지게 큰 이해진-_-

 처음 1년 동안은 분대도 다르고 해진이가 병장들과 주로 어울려 다녀 별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나는 원래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데 부대 안에 잔디구장까지 있어서 시간만 나면 선임들과 미친 듯이 축구만 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2007년 가을쯤부터 영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미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이왕 하는 거 자막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당시 자막은 포털의 까페에서 모여 팀으로 활동하거나 디씨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익명의 개인들이 만들어서 올리는 식이였는데 나는 팀에 합류하지 않고 익명으로 디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 번 하다 보니 인기 드라마인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따로 작업해서 여러 개의 중복된 자막이 나왔고 빠르게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완성도도 많이 떨어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개선을 해보고 싶어 자막 작업을 여러 명이 모여 구글 닥스에서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서 미드 자막팀을 꾸리는 것을 시도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하루 종일 걸리던 것을 잘게 쪼개서 여러 명이 동시에 진행하니 자막 작업이 1/n 은 아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자막제작은 아무 보상 없이 굉장히 노력이 많이 들어감에도 서로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인터넷이 가진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웹 2.0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자막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실제로 작업을 진행해보니, 2.0의 변화가 몸으로 와 닿았다. 사실 벤처 거품이 있었던 90년대 말부터 논의되던 가능성이지만, 그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문화적으로 실현 불가능해서 버블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현재는 그 가능성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개인의 생각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생활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웹 시장의 변화에 접근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해진이가 보기에는 좀 특이해 보였던가 보다.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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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나이 스물 다섯에 1년여 정도 벤처 팀 루키의 대표를 맡고 있고 덕분에 매일경제 1면에 이름도 조그맣게 나온 적이 있다. (야호!) 2005년까지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간 유학생이었지만, 이제는 휴학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다시 미국에 가면 나를 받아줄 학교나 있을지 모르겠다. -_- (지금도 난 휴학생이 아니라 제적생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성격을 잘 반영한 고등학교 때부터 이용한 닉네임, noljagoo!

 

내가 IT서비스 일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미스터리다. 나는 사실 웹 서비스에 관심도 없었고,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그런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의 군대동기 상돈이 때문이다. (-_-+)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2005 6월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당히 카투사에 입대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카투사로 가서 편하겠다고 항상 놀려 댔지만, 전투병에 지원하게 된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편한 군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절대 특기인 사교성으로 무장하고 우리 부대의 병장 라인과 금방 친해졌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 동생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예로, 나는 첫 외박을 가족과 하지 않고 편안한 군생활을 위해 과감히 부대에서 실세를 쥐고 있는 선임들과 보내며 밤새도록 술만 마셨다.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선임들과도 빛의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고, 병장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행복한 이병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꽤 오랫동안 1달 선임이었던 상돈이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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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 사진을 올릴 수가 없어서, 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Nick과의 사진을 올렸다. Sorry..ㅋㅋ>

그러나 한동안 나를 보호해주던 병장들이 제대를 할 때쯤, 나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략을 짜야 했다. 2달 위 제일 성질이 더러운 선임이 항상 나에게 누구랑 군 생활 더 오래하는지 두고 보자!”며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바로 위 선임들과 서둘러 친해져야 함을 알게 되었고, 상돈이에 대해서도 그제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상돈이는 술보다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나와는 많이 다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해지기가 쉽지가 않았다. 방에서 혼자 대금을 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다가 축구를 같이 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고 녀석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상돈이는 일명 디씨인사이드에서 무언가를 하는 이었고, 무슨무슨 번역을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데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부대에서는 한 달에 한번씩 책을 살 수 있었는데, 항상 2.0이라든지 롱테일이라든지 하는 전문 서적을 2~3권씩 다른 병사의 이름과 돌려 써 가면서 신청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갈굼을 당하기도 했다. 난 그때에도 상돈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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