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 모를 사람이 (한참을 이야기 하고 술잔이 오고 가도록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그냥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듯...) 내 몇 달 전의 기억 속에 짱박혀 있던 주상돈이 아닐까하는 호기심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주상돈씨 아니에요? 서울대 다니시고..."

주상돈... 당황한다.

"금년 초에 저한테 태터툴즈 플러그인과 관련해서 메일 보내신 적 있죠?"

상돈씨가 대답하기를 자기가 금년 초에 계획하던 것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한테 이런 저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단다. 그렇지만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며 잡아 뗀다.

자, 기억을 되살려 보자.

2007년 초의 이야기를 하자면, 한창 태터툴즈로 친구들과 팀블로그를 만들고 여기에 필요한 태터툴즈 플러그인을 만들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내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하나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연락 좀 달라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이런 식의 피드백은 처음이었던지라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댓글에 남긴 메일 주소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녕하세요. 주상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꽤나 긴 장문의 답메일을 받았다.
정확히는 2007년 3월 19일의 일이었다. (역시 내가 애용하는 구글 메일에 모든 기록이 남아있다.) 메일내용의 요지는 본인이 '블로그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내가 만든 플러그인을 보았고, 이것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적용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카투사로 복무 중이지만 1달 뒤면 제대를 할 것이고, 서울대에 다니고 있다는 자기 소개도 했다.
나는 이 메일을 보면서 '아... 서울대생도 뻘짓을 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뭐랄까... 세상물정 모르는 서울대생의 뻘짓거리? 여튼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전 됐습니다~"하는 답변을 줬다. 그런데 또 메일이 왔다. "혹시나 너무 거창하게 말해서 부담이 가셨을지 몰라서 다른 식의 관점도 말씀드립니다... 어쩌구 저쩌구..."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정확히 11통의 메일을 주고 받았다. 결국에는 '음... 되게 진지한데?"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참여 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이건 뭥미?'스러운 결말이지만, 아쉬운건 없었기에 내 나름 생각에 제대하고 정신차렸나 보다하고 넘어 갔었다.

그 날 설명회에서는 상돈씨가 어떤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는 비밀이라며 이야기 해 주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기획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에게도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8월 말은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정신 못 차리고 헤롱대던 시기였다. 외국에서 너무 잘 지냈던 탓이었을까? 학교는 다니기 싫었고, 필드에서 뛸 수 있는 진짜 일이라는 걸 해 보고 싶었다. 나를 크게 성장시킬만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이스타이밍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상돈씨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와 꿈, 야망에 대해 들으면서 역시 자연스럽게 Team Rukie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이 시작된지 1년이 채워지고 있다. 짧지않은 시간을 팀원들과 동거동락하면서 보낸 이 시점에서 팀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첫인상에 비한 행태(?)는 많이 달라져있다. 하나둘 모여가며 시작된 우리의 스타트업라이프에 많은 에피소드들도 쌓였고, 의미있는 히스토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되어 뿌듯한 감이 있다. 앞으로도 내가 이들에게 더 많은 의미가 되고 이들이 나에게 더 많은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한가지 오묘한 느낌은 이렇게 다시만난 주상돈의 압박속에 오늘도 개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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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내(Kenny2)

나이는 스물여덟, 경희대 컴공 휴학 중이고, 개발을 맡고 있다. 날로 살이 빠져가는 나를 보며 팀원들의 걱정은 늘어가지만, 정작 나는 "Kenny2의 청춘시대"라는 나름의 슬로건과 함께 어서 나의 청춘시대가 도래하기만을 바라며 오늘도 사무실에서 이틀 밤을 샌다.

사람의 운명이 바뀌고, 인연이 시작되는 것은 대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고, 계획된 약속보다는 바로 1시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만남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가 주상돈, 이해진 두 사람을 만난 그 날 술자리도 그렇다.

내가 애용하는 구글 캘린더에 의하면 상돈씨과 해진씨를 처음 만난 날은 정확히 2007년 8월 29일 이었다. 이 날은 소프트뱅크에서 주최한 리트머스2 프로그램의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IT 봉사와 여행 겸 해서 콜럼비아에 다녀온지 며칠 안 되어 적응 못하고 빈둥빈둥하던 차에 리트머스2 설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만나 뵙고 싶은 분이 있기도 하고 서울 구경 겸 해서 설명회에 참석했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호프집에서 뒷풀이가 있었는데, 이 때 내 오른편에는 상돈씨가, 상돈씨의 맞은편에는 해진씨가 앉게 되었다. 이 때 둘의 첫인상을 굳이 이야기 하자면, 상돈씨는 범생이, 해진씨는 날라리...
그 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내 또래는 상돈씨와 해진씨가 유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던거 같다. 두 사람은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리트머스2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둘이서 군대를 제대하고 창업을 준비한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경희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구성한 팀의 개발자도 경희대에 다닌다면서 ‘한승민’이라고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와 같은 00학번에 컴퓨터공학 전공이라는데 나는 '아싸'였던 관계로 누굴 물어보았든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승민이에 대해 상돈씨가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는데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작년에 MS에서 주최한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해 캠퍼스 내에 현수막이 걸렸던 친구였다. 컴퓨터공학 전공에서 현수막이 걸린다는게 흔치 않은 일이라 유심이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이 개발자들을 영입하려고 이메일도 수 차례 보내고 학교로 찾아가기도 했다는 나름의 히스토리를 들으면서, 뭐랄까... 갑자기 내 본능 속에 숨겨진 '촉'이 발동했다고 해야할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돈씨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왔다.

'이 인간... 내가 아는 사람 같다...'

 
Posted by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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