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또 다시 JAYDUB 이야. 우리나라 말은 참 재미 있어. 듣고 있니?

예를 들면..뭐 여러 가지 경우가 있지 ㅋ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마린브루스 홈피

 



오늘 나 JAYDUB이 소개할 얘기는 어느 날 사무실 밑 지하 식당에서 생긴 싸젼황말실수(?) 이야기야. (근데 중요한 건 캐치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거 ㅋㅋㅋㅋ)

 

어느 날 늘 가던 식당에서 순진하고 순수한 외모를 가진 싸션황과 사무실의 원조 홍일점 너부리 그리고 나 JAYDUB이렇게 세 사람이 밥을 먹고 있었어. 평소 우리는 그 식당이 엄마가 해주신 밥 같아가지고 조금 센 가격(4000)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가곤 하지. 마치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식당 아주머니께서는 매일 작고 귀여운 풋고추와 맛있는 쌈장을 주곤 하셨어. 싸젼황풋고추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날도 역시 고추를 집어 들었지.


근데 그때 갑자기 싸젼황이 너무나 신이나서 말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너부리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추가 커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사람은 진정 나뿐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웃지못할 오늘의 짤막 Team Rukie 에피소드 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호랭이~
,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07년 여름, 승민씨와 나, 상돈이 우리 세 명의 인연은(고생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대한 빨리 우리의 서비스를 세상에 내 놓고 싶어 좀이 쑤셨던 우리는 하루

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당시 제대로 팀이 다 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무실이란건 꿈도 꿀 수 없었고, 셋 다 학생신분이었던지라 당장 어디서 만나 이야기 할 것인지부터가 우리에겐 큰 문제였다. 셋이 만나 이야기하며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는 점심시간만 되면 3500원짜리 순두부찌개와 4000원으로 올라버린 제육덮밥 사이에서 침을 꼴깍 삼키며 아껴야 잘산다를 외치고 있다.) 그래서 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고 그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6시간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적도 있고,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커피도 시키지 않고 하루 종일 이야기하며 아르바이트 생에게 눈치 받던 기억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쨋거나 현실은 냉혹한 것! 꿈은 미래여도 밥값과 차비는 현실이어라~! 생활비라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나름의 일을 하며 서비스를 만들어 갔다. 기획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상돈이는 계속해서 과외를 해야 했고 (그러나 상돈이가 이야기 했듯이, 돈이 많이 급했던 당시에 녀석은 왕복 시간만 3시간인 곳으로 한여름에 땀을 흘려가며 20만원 짜리 초등학생 과외를 다녔던 적도 있다.) 나 또한 전화 영어 회화 아르바이트(“헬로우~? 쏼라 쏼라 블라블라~)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해가며 서비스를 만들어갈 자금을 만들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7,8월을 보내고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운 가족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승민씨를 만나기 전에 상돈이와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을 이용해 서비스를 구현해 줄 개발자를 찾아 다녔다. 웹 서비스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마땅한 인맥도 없었던 우리는 개발을 할 수 있을만한 분이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이메일부터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그 때 우리가 만나 뵈었던 많은 개발자 분들 가운데서는 우리가 진짜 이렇게 일을 벌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어떤 분은 우리에게 서비스를 구현해 줄 테니 1500만원(털썩-_-)을 달라고 하시기도 했고, 말도 안 된다며 공부나 하라고 타이른 분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rukie 서비스가 대학생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계속해서 크고 작은 현실의 장벽을 실감하며 이것들을 넘기 위해 노력해갔다.

그런 가운데 단 2시간 동안 우리의 아이디어를 흥미 있게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내리신 승민씨는 아마도 인연이 아니었을까? (물론 승민씨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하시지만요~ㅎㅎ) 아무튼 이 기회를 빌어 아무 것도 없었던 우리 둘을 믿어 주신 승민씨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Posted by 호랭이~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군생활 상병에서 병장이 될 때쯤, 상돈이는 별난 인터넷 서비스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인터넷 서비스의 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항상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사업에 관련된 얘기들은 언제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상돈이가 말하는 인터넷 사업들은 좀 심하게 터무니 없는 아이템도 있었고, 개인이 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넌 요즘에 잘나가는 서울대 조선과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취직이나 잘해.”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진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돈이가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한국에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업에 관련 된 정보를 공유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었다. 당장 복학해서 수강신청을 하려고 해도 강의평가수업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찍어서수업을 정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대학생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 학교에서는 블랙보드라는 시스템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각 수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수님, 조교까지 참여해서 수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젝트 과제가 나오더라도 모르는 것은 애들끼리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조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학생들을 도와줬던 블랙보드 시스템은 나의 학교 생활에서 큰 역할을 했었다. 또한 우리학교 커뮤니티에 있는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내가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꼭 들르는 사이트이기도 했었고, 교수님 수업 제대로 하시라는 이야기를 비롯한 재미있는 학교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르는 곳이기도 했다.


상돈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학생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라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을 때, 나의 군생활은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물론 제대를 4개월 남긴 시점이긴 했지만;; ㅎㅎ) 그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잊으며 그저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녀석과 함께 어떤 서비스를 만들 것인지 계획하는 것은 정말 멋진 시간이었다.


상돈이와 나는 24시간씩 교대 경비 근무를 했었는데, 병장이 되어서는 주로 PC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모든 커뮤니티와 외국 사이트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프링 노트에 우리의 생각을 계속해서 공유해 나갔다. 상돈이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해 놓으면 그 다음날 녀석이 자는 동안 아침에 내가 교대 근무를 한 후 읽어보고 나의 생각을 적는 24시간 풀 가동 방식으로 기획이 시작되었다. (지금 다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기 민망한, 웃음만 나오는 참 어이없는 내용도 많다.;;)


또한 우리 부대에 있었던 60~70명의 카투사들은 거의 90%이상이 서울권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서비스에 대한 설문조사도 어려움 없이 거의 매일 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도 우리의 설문을 즐거워했었던 것(?)같다. (병장 말기였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다.)


그렇게 3개월간 한 군대 기획을 들고 제대를 할 수 있었고, 이후에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파란만장하고 빈곤한 야생 벤처 생활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호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