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블로그, 그 첫번째 이야기.
나 이해진.
나이 스물 다섯에 1년여 정도 벤처 팀 루키의 대표를 맡고 있고 덕분에 매일경제 1면에 이름도 조그맣게 나온 적이 있다. (야호!) 2005년까지는 나름대로 미국에서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간 유학생이었지만, 이제는 휴학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다시 미국에 가면 나를 받아줄 학교나 있을지 모르겠다. -_- (지금도 난 휴학생이 아니라 제적생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성격을 잘 반영한 고등학교 때부터 이용한 닉네임, noljagoo다!
내가 IT서비스 일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미스터리다. 나는 사실 웹 서비스에 관심도 없었고,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그런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의 군대동기 상돈이 때문이다. (-_-+)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2005년 6월 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당히 카투사에 입대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카투사로 가서 편하겠다고 항상 놀려 댔지만, 전투병에 지원하게 된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편한 군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절대 특기인 ‘사교성’으로 무장하고 우리 부대의 병장 라인과 금방 친해졌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형, 동생’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예로, 나는 첫 외박을 가족과 하지 않고 편안한 군생활을 위해 과감히 부대에서 실세를 쥐고 있는 선임들과 보내며 밤새도록 술만 마셨다. 아무튼 그랬기 때문에 선임들과도 빛의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고, 병장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행복한 이병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꽤 오랫동안 1달 선임이었던 상돈이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사진을 올릴 수가 없어서, 볼 가능성이 전혀 없는 Nick과의 사진을 올렸다. Sorry..ㅋㅋ>
그러나 한동안 나를 보호해주던 병장들이 제대를 할 때쯤, 나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략을 짜야 했다. 2달 위 제일 성질이 더러운 선임이 항상 나에게 “누구랑 군 생활 더 오래하는지 두고 보자!”며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바로 위 선임들과 서둘러 친해져야 함을 알게 되었고, 상돈이에 대해서도 그제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상돈이는 술보다는 컴퓨터를 좋아하는, 나와는 많이 다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해지기가 쉽지가 않았다. 방에서 혼자 대금을 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다가 축구를 같이 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고 녀석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상돈이는 일명 디씨인사이드에서 무언가를 하는 ‘긱’ 이었고, 무슨무슨 번역을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데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부대에서는 한 달에 한번씩 책을 살 수 있었는데, 항상 웹2.0이라든지 롱테일이라든지 하는 전문 서적을 2~3권씩 다른 병사의 이름과 돌려 써 가면서 신청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갈굼”을 당하기도 했다. 난 그때에도 상돈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